저도 뒷북,,,연필깎는 노인,,,ㅋㅋ
작성 2003-01-19T21:23:13 (수정됨)
혜문오빠가 올린거 보구 전에 읽었던거 찾아서 올려요,,,훗,,,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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벌써 2년전의 일이다. 내가 대입시험을 치러 서울 여관방에 살 때다. <br />
수험장 왔다 가는 , 청량리 역으로 가기 위해 독립문서 일단 걸어가야 <br />
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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깜빡하고 필기도구를 안가져와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때마침, 독립 <br />
문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연필을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. 연필 한 자루 사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했다. 한 자루는 안파는것 같았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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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자루만 깎아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, "연필 하나 가지고 땡전 나오겠소? 1다스 사기싫으면 다른 데 가 사우." 대단히 빡받게 하는 노인이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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빡받아서 가려고 했더니 농담도 못하냐면서 팬티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.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.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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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음에는 빨리 깎는것 같더니,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.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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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이다. 시험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. 사실 시험 시간이 빠듯했다. 갑갑하고 지루하고 뒤가 마려울 지경이다. "더 깎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."고 했더니, 화를 버럭 내며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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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돈만 더 주면 이러고 있겠냐!!!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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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도 똥이 막혀서, "학생이 돈이 어딨단 말이오. 노인장 왕고집이시구먼. 뒤가 마렵다니까." 노인은 퉁명스럽게 "다른 데 가 사우, 난 안팔겠소." <br />
하고 가래침을 퇘~ 내뱉는다. <br />
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는 없고, 시험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, 될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. 사실 작년 대입점수가 80점이라서 애당초 포기한 몸인지라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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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여기 동전은 없고 회수권 있소.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." 회수권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더니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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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글쎄 웃돈이 없으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깐.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깎다가 놓치면 되나.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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좀 누그러진 말씨다.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공룡풍선껌을 씹고 있지 않은가. 나도 고만 지쳐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 다. 얼마 후에 또 노인은 깎기 시작한다. 저러다가 연필은 다 없어질 것만 같았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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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얼마후에 연필을 들고 이리저리 던져보더니 다 됐다고 내 <br />
준다. 사실 다 돼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연필이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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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소안에서 응가해야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. '그 따위로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가 개판일수 밖에 없다. 손님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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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 가지고 돈만 되게 밝힌다. 쌍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.' 생각할수록 치질이 도졌다. 응가를 하고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기지개를 펴면서 독립문을 바라보고 드러누웠다. 그 때, 그 누위있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고소해보이고 쭈글한 눈매와 콧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.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것이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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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험장에 와서 연필을 내놓았더니 사람들이 기차게 잘 깎았다고 야단이다. 연필굴리기 참 좋다는 것이다. 그러나 나는 다른 연필과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. 그런데, 과학만은 만점을받는 선배의 설명을 들어보면(다른 과목은 개판임)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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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이 너무 길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E=mc2에 의거 질량이 폭증하여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, 깎인 자리의 모가 반듯하지 으면 공기저항계수가 0.4이상으로 증가, 주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킴으로서 낙하지점의 오차가 생김으로 인하여 겐또가 안맞는다는 것이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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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 요렇게 꼭 알맞는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.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.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. 참으로 미안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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옛날부터 내려오는 컨닝페이퍼는 침으로 겉을 닦고 곧 뜨거운 밥풀로 붙히면 선생님 등에 붙혀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. 그러나 요새 컨닝페이퍼는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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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전에는 컨닝페이퍼에 밥풀을 붙힐때, 질 좋은 껌을 잘 씹어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.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선생님 등에 붙인다. 이것을 등친다고 한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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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요새는 접착제를 써서 직접 붙힌다. 금방 붙는다.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. 그렇지만 요새 남 시험 잘치는게 배아파서 며칠씩 걸려가며 등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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던지는 컨닝페이퍼만 해도 그렇다. 옛날에는 던지는것을 사면 10m짜리는 얼마, 20m짜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, 백발백중(百발百中) 한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. 백발백중이란 한 번 마음 먹은 곳을 던지면 정확히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. 개중에는 붙는 기능도 있어서 멀리서도 등칠 수가 있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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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눈으로 봐서는 백발백중인지 알 수가 없다. 말을 믿고 사는 <br />
것이다. 신용이다.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.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 데 백발백중하게 만들 리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주는 녀석도 시험당일만 되면 들켜서 끌려가게 된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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옛날 우리 선배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점수는 점수지만, 물건을 만드는 순간만은 오직 최고의 컨닝페이퍼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.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. 그렇게 순수하게 피를 토해내듯 심혈을 기울여 대작을 만들어 냈다. 이 연필도 그런 심정으로 만들었을 것이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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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. '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' 하던 말은 '그런 노인이 나같은 청년에게서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연필이 탄생할 수 있담'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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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얻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. 그래서 그 다음해 대입시험때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.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.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쓰러졌다. 시험을 못치게 되어서 허전하고 서운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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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마음은 연필을 얻지못해, 그리고 탁주를 얻어먹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. 맞은 편 독립문을 바라보았다. 푸른 창공을 가로지르며 독립문 밑으로 육교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. 아, 그 때 그 노인이 육교위에 지나가는 여자 치마를 훔쳐 보고 있었구나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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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심히 연필 깎다가 누워서 육교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자를 쳐다보는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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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'XXX東X下다가 XX見육교!' 도연명의 싯귀가 새어 나왔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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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동생이 무전기를 넣고 있었다. 전에 컨닝페이퍼를 만들다 들켜서 먼지나도록 방망이로 두들겨서 맞던 생각이 난다. 컨닝 페이퍼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. 요새는 얻어맞던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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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제발 한 문제만!!'이니 '한 번만 봐주이소'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소리도 사라진 지 오래다. 문득 2년 전 연필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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