뒷북인가.. 근데 재밌네요~
작성 2003-01-19T18:11:49 (수정됨)
옛날에 국어책에 있던 방망이 깍는 노인 패러디네요.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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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디 유머란에서 퍼왔어요~ 헐헐~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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★CD굽는노인(방망이깍는 노인)패러디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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벌써 4년 전이다. 내가 갓 게이머가 된지 얼마 안 돼서 용산구에 올라가 살 때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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용산역에 왔다가는 길에, 게임 시디를 한 장 사기 위해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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용산역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게임 시디를 구워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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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임을 한 장 사 가지고 가려고 구워달라고 부탁을 했다. 값을 굉장히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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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싸게 부를 것 같았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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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얼마 알아보고 왔소?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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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한 장에 5천원 아닙니까?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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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한 장에 만2천원이오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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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? 다른 곳은 5천원이던데..." 했더니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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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시디 한 장 가지고 에누리하겠소?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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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단히 싸아가지 없는 노인이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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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구워나 달라고만 부탁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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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잠자코 열심히 이미지를 뜨고 있었다. 처음에는 빨리 뜨는 것 같더니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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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물도록 이리 클릭하고 저리 클릭하고 굼뜨기 시작하더니, 마냥 늑장이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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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보기에는 다이렉트로 구우면 다 될 건데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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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꾸만 이미지만 뜨고 있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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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제 다 됐으니 그냥 구워달라고 해도 통 못들은 척 대꾸가 없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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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 TV에서 "카드 앵벌이 싸구려"를 방영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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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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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이미지 안 뜨고 CD to CD로 구워줘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"라고 했더니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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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를 버럭 내며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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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구울 만큼 구워야 시디가 돌아가지, 공시디에 라이터 지진다고 돌아가나" 한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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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도 기가 막혀서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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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굽는다는 말이오? 노인장, 용팔이시구먼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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카드 앵벌이 한다니까요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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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인은 퉁명스럽게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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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다른 데 가 사우. 난 안 팔겠소" 하고 내뱉는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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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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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영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,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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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그럼, 마음대로 구워 보시오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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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글쎄, 재촉을 하면 점점 인식이 안되고 뻑이 난다니까. 시디란 제대로 구워야지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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굽다가 놓치면 되나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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좀 누그러진 말씨다. 이번에는 이미지 뜬 것을 숫제 1배속으로 걸고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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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연스럽게 새턴을 켜고 야구권을 하고 있지 않은가. 나도 그만 흥분해 버려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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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경꾼이 되고 말았다. 얼마 후에야 시디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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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 됐다고 내준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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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게임 시디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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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영 시간을 놓치고 녹화본을 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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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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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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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.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용팔이다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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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.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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용산역을 바라보고 섰다. 그 때,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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용팔이다워 보이고,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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용팔이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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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에 와서 시디를 내놨더니, 아내는 이쁘게 구웠다고 야단이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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통신 판매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.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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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.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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싸구려 벌크 시디로 구우면 얼마 못 가서 시디가 인식이 잘 안되다가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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데이터가 쉬이 날아가며, 무리하게 고배속으로 구우면 다운이 잘 되고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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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영상이 끊기기 쉽단다.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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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.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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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 미안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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옛날부터 내려오는 복사 시디는 고급 화이트 골드 시디에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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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카시 방식 레코더를 사용해 저배속으로 구워 좀체로 뻑이 나지 않는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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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요새 시디는 한번 동영상이 끊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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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전에는 복사 시디를 구울 때 이미지를 미리 뜬 뒤에 이미지가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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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대로 떠졌는지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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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상 시디 이미지로 잡고 에뮬레이터로 확인을 한 뒤에 비로소 굽는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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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시간이 걸린다. 그러나 요새는 IDE 방식의 레코더로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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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D to CD로 직접 굽는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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금방 굽는다.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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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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몇 시간씩 걸려 가며 이미지 뜰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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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고 게임기만 해도 그렇다. 옛날에는 중고 플스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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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생 렌즈는 얼마, 값으로 구별했고, 정품 렌즈는 세 배 이상 비싸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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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품 렌즈란 다른 중고 플스에서 떼어낸 수명이 다 된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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렌즈가 아닌 신품 렌즈인 것이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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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으로 봐서는 신품인지 가변 저항을 조절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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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. 신용이다.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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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용팔이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정품 렌즈를 달 이도 없고, 또 그것을 믿고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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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.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, 생계는 생계지만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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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디를 굽는 그 순간만은 오직 잘 돌아가는 시디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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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.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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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법 복사 시디를 만들어 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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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시디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. 나는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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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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괴로움을 느꼈다. "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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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던 말은 "그런 노인이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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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 같은 게이머에게 용팔이 소리를 듣는 세상에서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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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떻게 잘 돌아가는 복사 시디가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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탄생할 수 있담"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.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오이 3개에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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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렌지맛 쿠우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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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. 그러나 단속이 떠서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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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.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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멍하니 서 있었다. 허전하고 서운했다.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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맞은편 용산역을 바라다보았다. 푸른 창공에 무너질 듯한 용산역 밑으로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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용산견이 잠을 자고 있었다. 아, 그때 그 노인이 저 용산견을 보고 있었구나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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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심히 시디를 굽다가 우연히 용산역의 마스코트인 용산견을 바라보던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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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. 나는 무심히 "그랫쿠나 무서운 쿠믈 쿠엇쿠나!"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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초난강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. 오늘, 집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DVD 레코더로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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플스 2 DVD를 굽고 있었다. 전에 플스 1 시디를 4배속 레코더로 굽던 생각이 난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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플스 1 복사 시디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. 요새는 플스 1 복사 시디 판다는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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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팸 메일도 날라 오지 않는다. "파이날 환타지 쎄븐"이니,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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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도끼매끼 메모리알"이니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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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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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득 4년 전 시디 굽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. 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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