現 육사교장의 편지..
작성 2004-02-06T22:01:06 (수정됨)
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, 젊은이 들이여!<br />
여러분들은 5,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?<br />
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?<br />
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<br />
지난날 5,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.<br />
<br />
<br />
5.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. <br />
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<br />
아시아,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. <br />
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.<br />
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,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<br />
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.<br />
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<br />
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.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. <br />
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<br />
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<br />
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. <br />
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<br />
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. <br />
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. <br />
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. <br />
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<br />
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. <br />
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<br />
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,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. <br />
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. <br />
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<br />
병들어 죽은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. <br />
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<br />
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.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. <br />
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<br />
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. <br />
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<br />
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. <br />
서독 방송,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<br />
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. <br />
“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?” <br />
해서 부쳐진 별명이 ‘코리안 엔젤’이라고 불리었다. <br />
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. <br />
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<br />
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<br />
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<br />
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.<br />
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. <br />
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<br />
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. <br />
코리안 간호사 만세!코리안 광부 만세! 코리안 엔젤 만세! <br />
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<br />
땡큐! 땡큐!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. <br />
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<br />
광부들을 위로,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. <br />
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<br />
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. <br />
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<br />
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. <br />
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<br />
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. <br />
대통령이 연설을 했다. <br />
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 역만리 타국에 와서 <br />
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<br />
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. <br />
“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.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. 열심히 합시다.” <br />
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. <br />
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<br />
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<br />
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. <br />
그리고,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<br />
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.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…. <br />
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<br />
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<br />
몰려나갔다. 어머니! 어머니! 하며….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, <br />
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. <br />
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<br />
“조금만 참으세요”라고 위로하고 있었다. <br />
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 절을 하며 울면서 <br />
“고맙습니다, 고맙습니다. 한국을 도와 주세요.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. <br />
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.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.”<br />
를 수없이 반복했다.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. <br />
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<br />
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<br />
“우릴 두고 어디가세요. 고향에 가고 싶어요.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.” <br />
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. <br />
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. <br />
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<br />
“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.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.” <br />
라고 힘주어 말했다.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<br />
“돈 좀 빌려주세요.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. <br />
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. <br />
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. <br />
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.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. <br />
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. <br />
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.” <br />
를 반복해서 말했다. <br />
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. <br />
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,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, 태국 220불등 <br />
이때, 한국은 76불이었다.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. <br />
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다. <br />
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! 이 100달러를 위해 <br />
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,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. <br />
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<br />
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. <br />
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<br />
“머리카락 파세요! 파세요!” <br />
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. <br />
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, <br />
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. <br />
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. <br />
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. <br />
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. <br />
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.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. <br />
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. <br />
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. <br />
세계가 놀랐다. <br />
“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?” <br />
하며 ‘한강의 기적’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. <br />
‘조국근대화’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. <br />
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. <br />
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<br />
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. <br />
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, 월드컵을 개최하고, <br />
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<br />
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<br />
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,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. <br />
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<br />
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, <br />
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, <br />
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,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<br />
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<br />
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. <br />
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<br />
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<br />
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…. <br />
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,60대들을 <br />
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. <br />
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<br />
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?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<br />
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<br />
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 우리들 신,구세대는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. <br />
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. <br />
이제 우리 모두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<br />
다시 한번 뭉쳐보자. <br />
우리 모두 선배를, 원로를,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, <br />
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, 베풀고, 이해해주면서 함께 가보자. <br />
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!!<br /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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